"행복한 이야기는 대부분 진실이 아니에요." - 정유정 <종의 기원>
취업 걱정으로 한참 고민하던 중 마지막 학기에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면서 스트레스를 풀자는 마음으로 밤샘독서를 신청했다. 친구들과 함께 모여서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처음에는 걱정했지만, 각자 읽고 싶은 책을 골라와서는 금방 책에 집중했다. 나는 1부 독서 시간에 이번에 나온 정유정 작가의 신작 <종의 기원>을, 그리고 2부 독서시간에는 <망원동 브라더스>를 골랐다. 두 책의 공통점이라하면 마냥 행복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7년의 밤>, <내 심장을 쏴라>를 인상깊게 읽었었고, 최근 Atx 잡지에서 정유정작가가 <종의 기원>을 쓰기 전에 순례자의 길을 걸으면서 했던 생각들을 인터뷰하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서 책을 골랐다.
나는 성악설과 성선설 중 성선설을 믿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사이코패스 사람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고 그들은 철저하게 자신을 중심으로 살아간다. 인류 중 2-3% 정도되는 사이코패스에서 최상위 1% 프레데터 '순수 악인'이 바로 <종의 기원>의 주인공 유진이다. 그들은 공감,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은 없지만,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읽어내고 자신의 뜻대로 조종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첫 장을 읽으면서 유진이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도 어찌되었건 어린이였고, 사람이었고 부모님께 사랑받고 싶다는 감정과 질투가 섞여. 어리석은 행동을 했던 것이라고 그의 감정을 충분히 내가 마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완벽한 오만이었다. 소설의 2장을 읽기 시작하고 엄마의 일기와 함께 과거의 일과 현재 살인 사건에 대한 실마리가 풀려 나갈 때, 나는 유진을 잠시 외면했다. 어쩌면 그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또 절친한 친구이자 입양된 형 해진에게 흔들리는 유진의 마음을 보면서 나도 함께 흔들렸다. 유진은 어쩌면 사회에서 어울려 살 수 있을거라고 작은 희망을 가졌다. 어떻게 결말이 나고 나의 희망이 옳은 것이었는지, 아니면 부질 없는 것이었는지는 비밀로 하고 싶다.
아마 작가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순수한 악'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싶은 그런 욕심, 다른 사람의 피해를 생각하지 않는 이기심은 세상 모두가 가지고 있다. 심지어 나 자신 조차도, 우리는 '악'을 외면하기도하고 마주하기도 한다. 외면하고 악에 지는 순간을 누구나 겪었을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억누르고 있는 내 악을 그리고 나의 마음을 다시 한 번 제대로 마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앞의 책을 갖가지 인상을 쓰면서 읽었다면 <망원동 브라더스>는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나에게 응원을 해주는 책이었다. 별볼일 없고 사회의 끝자락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을 찾아가는지 유쾌하고 흥미롭게 이야기는 진행됬다. <망원동 브라더스>도 아예 행복한 결말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그렇듯이 이들도 노력하고 있고 옥탑방에서도 충분히 사람들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개회사의 말씀처럼, 어른이 될 수록 무엇인가 좋아하는 일만 파고드는 일이, 한 가지 일만 파고 드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졌다. 시간이 부족해서, 다른 일이 급해서 갖가지 핑계를 대면서 책을 읽는 일을 뒷전으로 미루던 내가 행사에 참여해서 오랜만에 책상에 앉아 소설의 뒤를 궁금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람들과 함께 야식도 먹고 퀴즈를 풀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책을 마주하는 시간만이 아니라 나를 마주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선생님들도 힘드실텐데도 자리를 끝까지 함께 해주셨다. 앞으로도 밤샘독서가 더 자주 열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