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밤샘독서 때 읽을 책으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전집을 택했다. 평소에 이런저런 다른 책들을 읽다보니 우선 순위에서 밀려나있던 책인데, 이번이 마음 속에 묵혀왔던 책을 꺼내볼 좋은 시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류노스케를 논할 때에, 특히 그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아마 어떤 주제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지 그 견해가 나뉠 것이다. 작품 하나에 집중해 이렇게 저렇게 빈틈없이 요리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가 남긴 단편들을 구슬 꿰듯 통찰해 그 공통점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 어떤 방향이든 좋은 일이고, 두 연구가 병행되어 개성있는 결론이 나오는 편이 가장 훌륭하겠지만서도, 한 단편에 대해 짧게나마 나 스스로와 논의해보는 쪽이 내 구미를 당긴다.
라쇼몬이 단편으로서 큰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그 안의 핵심이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불안과 불분명한 공포가 지배하는 헤이안 시대의 어느 날은 마치 우리의 인생의 어느 날과도 같아서, 우리로 하여금 그 무목적성을 매섭게 깨우치게 한다. 우리는 하인으로서의 일자리를 잃고 길거리를 헤매는 하인일 수 있고, 시체들의 머리카락을 뽑아 가발을 만드는 노파일 수도 있다. 어떤 쪽이던 우리는 마치 어떤 날의 날씨처럼 흐릿하고 불안정한 기운 아래 내던져진 가난한 방랑자의 초상이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갈지 모르는 나약한 현존재들이야말로 라쇼몬의 주인공들이다.
인간의 근원에 대해 다룬 책으로 참고해볼 도서는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를 선정했다. '지상의 양식'은 그 문장 하나씩이 꼭 동양고전, 특히 도덕경과 장자의 문장을 떠올리게 했다. 지식의 본성을 다루고 있다는 면에서 학생이라면 읽어볼 가치가 있다. '다섯째 아이'는 현대 사회의 구조와 개인의 욕심 사이를 줄타기하는 혼란스러운 인간상을 제시한다. 작품의 초점이 온전히 개인에게 맞춰져 있지는 않지만 나름의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 책이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