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새벽 네 시를 조금 넘어가고 있는 시간입니다.
보통 이 시간의 저는 좁은 방 한 구석에 지친 몸을 눕히고, 하루의 일을 되돌아보며, 치열하지 못했던 자신을 자학하곤 합니다.
남들보다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는 인식이 당연하게 퍼져 있는 판국에 하루를 반성하는 부분은 주로 게으름과 나태함입니다.
오늘 내가 무심코 던진 말이 누군가를 상처입히지는 않았는지, 가까운 사람들을 친하게 생각다 못해 무례하게 대하지는 않았는지. 사람을 대하는 관계에 대해서는 반성하지 않는 제 모습이 너무 부끄럽습니다.
말만 인문학을 공부한다 하지만 정말로 내가 사람을 위한 공부를 하고 있는 건가?
나를 정말로 객체가 아닌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으로 볼 수 있을까?
존재에 대한 탐구는 언제든지 나를 떠나지 않고, 영원히 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 나약함이 싫어, 생각이 꼬리를 물지만 제 자리만 맴돌 뿐입니다.
이러한 고민을 안고, 오늘 학술정보원에서 주최하는 밤샘 독서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우리의 인생이 덧없게 여겨지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역사의 큰 흐름 속에서 이름 없는 민중들은 봄날의 우수수 떨어지는 벚꽃잎에 진배없으니까요. 이러한 생각은 세상을 허무적이고 회의적으로 인식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도서관에 오면서 이러한 제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았습니다.
책장 사이를 걸으며 마주하는 다양한 종류의, 다양한 국적의, 수 만 권의 책들에는 한 사람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 있으며, 지금의 저에게 읽어달라 아우성치고 있었습니다. 책에는 한 사람의 인생, 삶의 방식, 사유과정이 담겨 있으며 우리를 더 높은 차원의 단계로 인도합니다.
다채로운 제목의 책들을 보며, 사람의 삶이라는 것이 덧없지 않구나, 치열하게 부딪히고 단단해지는 과정을 겪어 완성에 가까워지려고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역사 속에서도 한 권의 책이 거대한 물결을 만들어 역사를 바꾸는 일이 있고, 그 변화운동의 주인공은 항상 일반 사람들이었습니다. 책장에서 책을 고르고 자리에 앉아 책을 읽다가 무심코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로 책에서 무언가를 구하고 있는 학우분들을 보며 다시 한 번 사람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몸은 녹초가 되어 피곤하지만, 독서에 집중할 수 있게 이것 저것 준비해주신 관계자 선생님들의 마음과 오는 잠을 막아보려 서서 책을 읽는 사람들께 깊은 애정을 느끼며 제가 한층 더 성숙해지게 된 하루가 된 것 같습니다.
참여하신 학우분들, 관리자 선생님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누구보다 내 자신아, 정말 수고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