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한국에서 자랐다. 한국은 과거에 불교가 국교인 고려였고, 유교가 국교인 조선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생활에 깊은 곳 까지는 아니어도 ‘불교’라는 큰 종교를 아예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불교를 믿는 불교신자는 아니었고, 또한 한번도 불교에 대해서 공부하거나 불경을 읽거나 그들의 철학에 대해 깊이 생각할 기회는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 <밀린다왕문경>이라는 책을 읽어야한다고 생각했을 때는 매우 막막했다. 나는 불교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데 어떻게 불경에 관한 어려운 책을 읽을 수 있을까. 그러나 내 걱정은 기우였다는 듯이 이 책은 불교에 대해 어렵지 않게 나에게 이야기하듯이 알려주었다.
<밀린다왕문경>은 <미란왕문경>또는 <나선비구경>이라고도 한다. 이 이야기는 과거에 서북의 인도를 지배했던 그리스의 왕인 밀린다와 어떤 스님인 나가세나 존자가 불교에 관에 서로 문답하는 내용을 그린 책이다. 이 문답 후에 밀린다왕은 출가하게 되었고, 그 과정 또한 대화형식으로 이루어져있다. 밀린다왕은 그리스 사람으로서 그리스적 사유를 가지고 자신이 불교에 대해 궁금했던 점에 대해서 물어보고 나가세나 존자는 그에 대해 다양한 비유를 통해 답을 들려준다.
시인 김춘수는 내가 이름을 부를 때 비로소 꽃이 되었다했다. 이 이야기는 ‘이름’이 그 존재가 존재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과연 이름은 이렇게 어떤 존재를 정의하고 그 존재가 존재로서 있을 수 있게 하는 것인가? 내 이름은 과연 나를 구성하는데 있어 ‘나’를 어떻게 존재하게 만들까. 타인이 내 이름을 몰라도 ‘나’는 온갖 분자로 구성된 인간이라는 생물체로서 존재한다. 이것은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는 것인가. 이렇게 내 이름과 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자주 궁금해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누군가 좀 더 철학적인 질문을 할 때면 생각해보게 되는 질문이다.
이러한 내용에 대해, 밀린다 왕은 나가세나 존자에게 이름에 대한 문답을 한다. 존자가 자신의 이름에 인격적 개체가 없다고 말하자, 밀린다 왕은 이를 주변 사람들에게 다시 강조하며 존자에게 그렇다면 나가세나라고 불리는 것은 무엇이냐고 묻는다. 육체를 구성하는 것, 이것들을 합친 것, 5온, 5온이 아닌 것들도 나가세나가 아니라고 대답한 존자에게 밀린다 왕은 그렇다면 나가세나가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서 거짓말을 한 것이냐고 묻는다. 이에 나가세나 존자는 밀린다 왕에게 그가 타고 온 수레를 이용해서 반문한다. 수레를 구성하는 것, 이들을 합친 것, 그 외의 것들이 모두 수레가 아니라고 답하는 왕에게 존자는 그렇다면 당신도 수레라는 존재에 대해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답한다. 이에 왕이 수레의 구성품들에 반연하여 수레라는 명칭이 생긴다고 답하자, 자신의 이름 또한 같은 원리를 통해서 생긴다고 답하여 밀린다 왕의 난제를 훌륭히 통과하게 된다.
이 문답을 보고 처음 든 생각은 나가세나 존자의 비유가 쉬우면서도 굉장히 어렵게 느껴졌다. 이것은 직감적으로 5온을 통해 구성되어있는 어떤 존재는 실존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단순한 합이 아닌 그 이상의 존재로 나타나는 것이고 그것은 그 이상의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이름을 가지고 그 이름이 그 존재를 대표하는 하나의 명칭으로 나타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무생물이 아닌 생물체도 똑 같은 구성물질을 가지고 똑같이 만들어 내면 그것 또한 그와 같은 존재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름에 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좀 다른 질문인 것 같기는 하지만, 뭔가 ‘이름’이라는 것은 어떤것이고, 그리고 내가 수업시간에 배운 색수상행식 5온은 단지 그것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그것이 존재를 존재하게 만드는 어떤 것이라는 느낌을 더 잘 받은 것 같다.
이름에 대한 질문 외에 제일 인상깊었던 담론은 무아설과 윤회사상이 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불교가 전생, 현생, 내생의 삼생이 있다는 윤회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전생의 업에 따라 현생이 정해진다는 그런 이야기가 있다는 것은 예전부터 알았던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당연히 불교는 영혼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그 영혼이 윤회를 한다고 생각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불교는 영혼이 없다고 믿고있다. 그럼 영혼이 없다면 윤회를 어떻게 하지 어떤 존재가 윤회를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러한 의문점에 대해 밀린다 왕은 “나아가세나 존자여, 재생한 자와 사멸(死滅)한 자는 동일합니까, 또는 다릅니까.” 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나가세나 존나는 “여기 어떤 사람이 등불을 켠다고 합시다. 그 등불은 밤새도록 탈 것입니까.”라고 물었다. 그에 밀린다 왕은 “그렇습니다. 밤새도록 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나가세나 존자는 “그런데, 대왕이여, 초저녁에 타는 불꽃과 밤중에 타는 불꽃이 같겠습니까.”, ”또, 밤중에 타는 불꽃과 새벽에 타는 불꽃이 같겠습니까.”, “그렇다면, 초저녁의 불꽃과 밤중의 불꽃과 새벽의 불꽃은 각각 다르겠습니까.” 라고 물었다. 그에 밀린다 모두 아니라고 하였다. 나가세나 존자는 “대왕이여, 인간이나 사물의 연속은 꼭 그와 같이 지속됩니다. 생겨나는 것과 없어지는 것은 별개의 것이지만, 앞서거나 뒤서거나 하지 않고 동시에 지속(순환)되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존재는 동일하지도 않고 상이(相異)하지도 않으면서 최종 단계의 의식에로 포섭되는 것입니다.”라고 답하였다.
이러한 불꽃의 이야기 처럼, 인간 또한 마찬가지이다. 윤회를 하면 인간은 각기 다른 존재로서 삶을 살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연속된 존재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그들의 영혼이 있기에 윤회가 가능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행한 업에 따라서 이후의 형태와 모습이 정해진다. 그렇기에 무아설과 윤회는 모순되지 않는다. 나가세나 존자는 이러한 설명을 통해서 밀린다 왕을 납득시킨다.
이렇게 밀린다 왕은 우리들이 불경에서 궁금해 했던 것들 난해한 이야기 들에 대해 질문하고 나가세나 존자는 다양하고 풍부한 비유로 설명해준다. 이 비유는 보다 납득하기 쉬우면서도 내 생각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의 설명은 내 이야기를 다시한번 곱씹어보게 하고 또한 내 스스로 생각해 보게 만든다. 이러한 그들의 문답은 철학적일 뿐 만 아니라 내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다양한 생각을 좀더 깊게 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밀린다왕문경>은 처음 학문으로 접하게 되는 ‘불교’라는 종교에 대해서 내가 여러 학문을 공부하고 생각해 볼 때 좀더 유의미하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불교’가 내가 알지 못하는 언어로 쓰여져서 다가가기 힘들고 어려운 말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내용 안에는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또한 다양한 비유를 통한 여러 내용들은 불경에 쓰여진 여러 말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내 종교가 아니고 내가 공부하는 학문이 아니기에 읽지 않았을 수도 있었던 이 책을 이번 기회에 읽게 되어 좀 더 뜻 깊은 시간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가 궁금한 사람들은 한번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