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 [쌀, 재난, 국가]
책 저자: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 교수
쌀을 주식으로 하는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사회적 불평등이 어떻게 생겨나고 커지는지를 다룬 흥미로운 책입니다. 사회학자인 저자는, 집단적 노동력과 협업이 필수적인 쌀 농작이 동아시아 특유의 공동체를 만들었고, 나이에 따른 위계 문화까지 이어졌다고 설명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위계 문화가 산업화 사회에 와서 ‘연공서열제’로 변모하게 되고, 오늘날의 대기업-중소기업 간 초격차와 각종 불평등 문제를 낳았습니다. 오늘날 동아시아 시민사회에서의 불평등과 초저출산의 문제는 벼농사 문화로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뒤집어보면 각종 노동 불평등 문제의 해결책은 직무급제를 도입하면서 시민사회에 퍼져있는 연공서열제라는 제도와 나이 문화를 점진적으로 깨뜨리는 것입니다.
불평등에 대해 오래전부터 관심이 깊었지만, 저는 불평등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궁극적인 해결책은 어떠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한국 시민사회 불평등의 원인은 벼농사 체제에 있다’라는 주장은 정말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언뜻 들었을 때 황당했지만, 저자가 제시하는 다양한 데이터를 통해 저자의 주장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중국 내에서 벼농사 지역과 밀농사 지역의 문화 차이라든지 노동체제의 유형을 분석한 자료도 있었고, 우리나라 기업 내 임직원의 평균적인 연령에 따른 노동생산성과 발전가능성을 분석한 자료도 있었습니다. 연공서열제의 제도와 문화를 깨뜨릴수록 평등한 문화와 제도가 발전해 불평등의 문제가 상당히 해소될 것이라는 깔끔한 결론이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