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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페스티벌 중간 이벤트 참여 - 박자연
write by 박자연  2022/05/16

<죽음의 수용소에서>-빅터 플랭클

나치 독일에서의 강제수용소의 생활은 내가 상상했던 것 보다 더 끔찍했다. 수용소 안에는 자살할 수 있는 방법이 충분히 많았기 때문에 나였다면 진작에 자살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생존자들이 끝까지 버텨내고 살아남으려 하는 노력의 원동력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저자는 정신과 의사로, 수용소 생활 속에서도 삶의 의미에 대해 고찰한다. 저자는 삶의 의미는 사람마다, 때에 따라 다르다고 말하며, 일반적인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삶은 막연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으로,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 되는 경우도 없고, 각각의 상황은 다른 반응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했다.

수용소 안의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자살을 생각할 때 마다, 저자는 누군가의 자리를 대신 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해주었다. 즉,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또 내가 해야 하는 일에 나를 대체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각인시켜주었다. 이는 수용소 안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찾는데 큰 도움이 되었고, 책을 읽는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면서 저자는 사람이 어느 정도 긴장상태에 있을 때 정신적으로 건강하다고 말하였다. 이는 이미 성취해 놓은 것과 앞으로 성취해야 할 것 사이의 긴장, 그리고 현재의 나와 앞으로 되어야 할 나 사이에 놓여있는 간극 사이의 긴장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든 긴장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자신이 성취해야 할 삶의 잠재적인 의미를 밖으로 불러내는 것으로, 인간에겐 항상성이 아닌 정신적인 역동성이 필요하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현대에 ‘실존적 공허’가 만연해있다고 말하였는데, 이는 여가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몰라 ‘일요병’이 생긴다거나, 연금생활자, 나이든 노인들이 느끼는 위기감이 해당한다. 이들은 돈에 대한 욕구와 같은 권력욕으로 이 좌절을 보상받으려고도 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러한 공허를 해결하고 삶의 의미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세 가지 방법이 필요하다.

1.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3.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2번에서 말하는 사랑의 의미를 설명하자면, 사랑을 함으로써 사랑하는 사람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특성과 개성을 볼 수 있으며, 그 사람이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과, 아직 실현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실현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볼 수 있게 되며, 이로써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자신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깨닫고 잠재능력을 실현시킬 수 있다. 3번에서는 시련의 원인을 제거할 수 있다면 제거하는 것이 좋지만, 그렇지 않다면 시련을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보고 극복하여 자신을 한층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성인이 된 이후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권태가 길게 지속되면서 ‘죽지 못해서 살아간다.’라는 생각을 하던 때가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삶의 의미를 찾는 방법을 알았고, 심지어 강제수용소 안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존경심이 느껴졌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 25살에 이 책을 읽게 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고, 앞으로도 이 책을 읽고 느낀 지금의 감정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혹시라도 삶의 의미를 찾고있거나, 삶의 권태를 느끼고 있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삶의 의미에 대한 내용 외에도 기억에 남는 내용들이 있다. 수용소에서 발진푸스에 걸렸지만 건강상태를 잘 유지하던 한 친구가 꿈에서 한달 뒤 자유가 될 것 이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날이 다가와도 기대했던 해방의 날이 오지 않자 갑자기 발진푸스가 심해지면서 사망하였다. 희망과 용기의 갑작스런 상실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실제로 1944년 성탄절~1945년 새해에 이르기 까지 일주일간 사망률 급격히 증가하였다고 하는데, 성탄절에는 집에 갈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이 사라져서 용기를 잃고, 절망감. 그들의 저항력에 영향을 끼쳐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고 한다. 정신력이 체력, 신체의 능력, 건강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는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지만, 삶에 대한 의지의 차이로 생사가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 인상 깊었다.

해방 이후, 수용소에서 나온 사람들은 자유를 마치 특허를 받은 것처럼 잔인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억압을 받는 쪽에서 억압을 하는 쪽이 되곤 했다. 자신들이 경험한 끔찍한 경험으로부터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며, 무언가를 망치거나 다른 사람들을 해쳐도 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충격적이면서도 당연한 반응이다. 하나의 보상심리라는 생각이 드는데, 나도 이러한 경험이 있다. ‘내가 그 동안 겪었던 고통과 인내가 있는데 이 정도의 행동은 괜찮겠지’라는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옳지 못한 짓을 했다고 하더라도 자기가 그들에게 옳지 못한 짓을 할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 과거의 내 행동에 반성을 하면서도, 앞으로 살아갈 때 간직해야 할 중요한 생각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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