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은 천지개벽하듯이 갈라진다. 수박이 두 쪽으로 벌어지는 순간, '앗!' 소리를 지를 여유도 없이 초록은 빨강으로 바뀐다.
11월 7일 학술정보원에서 주최한 창의인문독서특강에서 박웅현 작가가 전한 김훈 작가의 말이다. 이 말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우리는 그동안 매년 수박을 먹어오면서도 그 빨간 속에는 감탄할 줄 모르고, 속이 노란 수박에나 감탄할 줄 알았던 것이다. 박웅현 작가가 "울림"이라는 단어를 강조할수록 나에겐 큰 의문이 생겼다. 도대체 담쟁이를 보고 희망을 노래하게 만들며, 적막만이 감돌던 하루를 아름다운 샛소리로 가득 채워주는 이 울림이란 어떤 것일까? 그리고 박웅현 작가가 "울림"이라는 소재로 쓴 책, "책은 도끼다"를 읽으며 내 의문은 점점 변했다. 도대체,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울림을 놓치고 살아온 것일까?
나는 감동을 잘 받는 편이다. 좋아하는 록밴드의 라이브 공연에 감격의 눈물을 흘리거나, 석양의 광채를 보고 감동받는 일은 나에게 흔한 일이었다. 따라서 박웅현 작가의 강연을 들으면서도 막연하게 나는 울림판이 큰 사람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음을, 오히려 나는 울림이 부족한 사람인 것을 보여주었다.
할미꽃이
비를 맞고 운다.
비가 얼마나 할미꽃을 때리는동
눈물을 막 흘린다.
-안동 대곡분교 3년 이성윤, 할미꽃
책을 읽다 참신함에 감탄해 메모해둔 시이다. 나는 그 어느 꽃을 보면서도 그것이 눈물을 흘린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시인의 재능은 자두를 보고도 감동을 받는 것이라는데, 위의 시를 쓴 시인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혹은 오히려 그 어린 나이 덕분에) 나보다도 더 큰 시인의 재능을 갖췄다.
모두 옮겨오진 못하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위와 같은 문장을 옮겨적느라 바빴다. 불이 꺼지지 않는 중앙도서관은 박웅현이 선사해준 울림으로 가득했다.
행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매일같이 지나다니던 길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눈을 두는 곳마다 예술가의 손길이 닿은 화폭이었다. 노란 듯 푸른 듯 밝아오는 동쪽 하늘 앞에서 각자 높낮이도 다르고 지붕의 모양도 다른 아파트 건물들은 마치 도심의 산맥 같았다. 그리고 그 산맥 위, 밤이 끝나가는 것에 저항하는 듯 별 하나가 스스로를 불사르며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 광채에 발이 묶여있다 서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그곳엔 또 새로운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쪽빛과 보랏빛이 조화로운 밤하늘 위를 온갖 별들이 수놓고 있었다. 언덕 위 가장 낮게 깔린 오리온의 허리띠 외에도 이름 모를 별들이 자신을 잊지 말아달라는 듯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집에 들어갈 때까지 그 광경을 한참동안 눈에 담았다.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와 함께한 중앙대학교 학술정보원 밤샘독서의 날이 나의 울림통을 조금이나마 키워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