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이 책을 처음 접했다. 파티셰인 주인공 김삼순이 마들렌을 먹으면서 이 책에 등장한 마들렌의 묘사를 들려주는 장면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쿠키라고 표현한 주인공의 말에 호기심이 생겼다. 그러나 처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을 펴자마자 절망하고 말았다. 한 페이지를 넘기기 힘들정도로 문체가 어려웠고, 화자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결국 세 페이지를 채 읽지 못하고 포기하고 말았다. 그 후로 이 책을 보게 되더라도 '어려운 책이야, 더 크면 읽자'라는 마음으로 도망치게 되었다. 밤새도록 읽을 책을 고르는 중에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는 조금 컸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다는 감성 때문인지 잘 모르겠지만 왠지 오늘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을 수 있을것 같았다. 그리고 다행히도 긴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한 권을 읽어냈다.
사실 이 책은 읽기에 쉬운 책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문장이 길어서 읽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수능 영어에 나온 지문을 읽는 기분이랄까. '나'의 의식을 따라 쉬지않고 이야기가 흘러가기 때문에 따라가다가 흐름을 놓치면 처음으로 되돌아가야만 했다. 하지만 읽다보니 점차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문장이 긴 대신에 이 책은 묘사로 가득 차있었다. 이 책에서는 꽃을 하나 표현해도 미사여구가 대여섯개는 붙는다. 이렇게 하나씩 그림을 떠올리며 이야기가 따라가다 보니 회화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복도를 걷는 느낌이었다. '나'의 방에서, 방에 있는 환등, 환등에서 시작된 옛 이야기까지 한 그림에서 다음 그림으로 이동하는 속도가 빠르긴 해도 그림 자체는 훌륭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나'는 나와 비슷한 면이 많아서 책을 읽어나가는 것이 즐거웠다. '나'는 나와 마찬가지로 생각이 많다. 이 책 한권이 '나'가 하룻밤동안 떠올린 생각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정말 많은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종종 길을 걷다가 멈춰서 생각에 잠기거나, 사소한 발견으로 즐거워하고, 스스로 왜 기쁨을 느끼는지 고민한다. 걸어다니는 순간에 즐거움을 찾고 그러다가도 왜 내가 즐거워하는지 궁금해하는 내 모습과 닮아있다. 신기한 부분이다. 또한 스완네 집 쪽으로에 등장하는 '나'는 아직 미성숙하다. 어머니의 품에서 머무르며 완전한 안정을 취하고자 한다. 어머니에게 유아적인 집착을 보이면서 스스로 그 점을 깨닫고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사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다. 게다가 지금도 완전히 벗어났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읽으면서 속으로 혼자 찔리기도 했다.
'밤'이라는 시간은 독특한 분위기를 가진다. 2015년 10월 2일에서 3일로 넘어가는 '밤'은 나에게 어떤 힘을 갖게 했다. 어렵지만 아름다운 문장을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는 힘을 준게 아닌가 싶다. 밤새 책을 읽은 4시간여가 최근 들어 가장 집중한 때였다. 어떤 소리도 듣지 못하고, 시간가는 줄 모른 채 독서를 한 것은 굉장히 오래간만이었다.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 든다. 덧붙이자면, 이런 기회가 1년에 한 번 뿐이라는 점이 아쉽다. 선생님들이 좀 힘드실 수 있겠으나 밤샘독서행사가 좀 더 많이, 주기적으로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