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반드시 냉정한 기부를 하셔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나쁜 사람임에 틀림 없습니다."

<냉정한 이타주의자>는 ‘같은 기부를 하더라도, 조금 더 냉정하고 효율적이게 하라’는 내용을 담은 서적이다. 저자는 책의 초반부에서부터 이러한 내용의 논지를 펼쳐나간다. 먼저, 기부를 할 때엔 기부 금액이 사용되는 효율성을 따져서 기부 받는 사람이 좀 더 행복한 방향으로 기부를 해야하며, 기부를 할 때엔 기부 사업의 내실을 충분히 따져서 속히 말하는 ‘빛 좋은 개살구’가 되지 않도록 해야하며, 마지막으로, 기부단체에 일을 하는 것보다, 의사가 되어 돈을 많이 벌어 기부를 더 많이 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고 얘기한다. 요약하면, 기부를 할 때엔 여러가지를 고려하여 편익이 큰 방향으로 하라는 것이다.

첫번째 파트에서 저자는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들이 전세계 소득의 상위 1퍼센트일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한다. (책의 내용이 기부단체의 홍보 카탈로그 같다는 점과, 이 책의 저자가 ‘기빙왓위캔’, ‘8만시간’ 이라는 기부단체의 설립자라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받아들일 수 있는 추측이다.) 이 책을 읽을 정도로 여유로운 우리가 기부를 꼭 해야한다는 사실을 말하며 시작한다.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기부를 하지만 기부금이 더 효율적으로 쓰였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가령, 어떤 마을에 식수펌프를 보급했으나, 효율성이 떨어져서 정작 마을 주민들은 있느니만 못한 것이라 칭하지만, 세계 여러 언론들과 갑부들이 이 식수펌프를 칭송하며 엄청난 지원금을 펀딩 받았다. 이처럼 기부시에 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예시를 들며 시작한다. 또한 각종 재해구호에 기부되는 돈들보다, 아프리카의 구충제 보급이 더 효율적일 것이라 말하며 회의적인 의견을 내놓는다. 더불어, 투표를 통해 자기가 원하는 후보의 정치력을 이용하여 기부를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한다.

두번째 파트에서는 기부금이 쓰이는 방향과 효율적이고 냉정한 기부에 대해 얘기한다. 독자에게 제 3세계 국가에서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공정무역처럼 좀 더 비싼 제품을 사지말고, 차라리 노동착취 공장의 제품을 사라는 말을 한다. 오히려 현지에서 보면 없어서 못 가는 일자리라는 충격적인 말도 덧붙인다. 또한 대학 졸업 후 사회단체나 기부단체에서 일하지 말고, 차라리 돈을 잘 버는 직업을 선택하여 벌어들인 수익을 기부에 쓰라는 말도 덧붙인다. (이 부분 역시, 저자가 이러한 논리를 펼치는 기부단체 ‘기빙왓위캔’의 설립자라는 사실 역시 고려해야한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기후변화보다 빈곤층에 기부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고 덧붙인다.

저자는 위와 같은 논지를 각종 수치들과 기부단체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가 자신의 직업으로 돈을 벌어 기부를 하라는 ‘기빙왓위캔’이라는 단체와, 기부를 위한 코칭을 하는 단체 ‘8만 시간’이라는 단체의 설립자임을 고려해야한다. 편향적인 시각으로, 자신이 추구하는 효율적 기부와 반하는 모든 기부는 멍청하고 쓸모없는 것이라며 비판한다. 그래서인지 책 전반적인 내용의 논지를 이끌어가는 근거가 부족하다. 책에서 근거라고 가져온 모든 그래프는 그 모집단과 모수가 부족하여 신뢰성이 의심되며, 특히 행복도를 측정하는 척도에 대해서는 사회적, 개인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전형적인 일반화의 오류라고 보여질 정도이다. 얼마나 논지가 부족하면 저쪽 기부단체에 기부하지말고, 여기 우리 단체에 기부를 좀 더 해달라는 내용의 저급한 광고 카탈로그를 읽고 있는 느낌마저 들게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모든 기부는 옳다고 생각한다. 기부라는 행위 자체가 강제되는 행위가 아니고, 자발적인 마음에서 촉발되는 행위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더욱 모든 기부는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을 것이다. 기부하는 개인이 환경문제에 더 관심이 있을 경우, 환경단체에 기부를 할 것이고, 빈부격차 해소를 위한 기부운동에 관심이 있을 경우 이러한 단체에 기부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저자는 다수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방법이라며 ‘공리주의’를 앞세우며 모든 이들이 ‘효율적인 기부’를 해야한다고 외친다. 앞서 말했듯이, 이러한 논지를 이끄는 근거도 편향적이고 빈약할 뿐 아니라, 기부 자체의 의미를 고려할 때 저자의 의견에 100퍼센트 동의를 할 수 없는 점이 안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