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상용화 된 배경에서도 인간의 실수로 좀 더 특별하게 만들어진 로봇 '콜리'를 첫만남에 알아보고 손을 건네준 것은 연재가 남들이 보기에는 독특하고 특별해 보일 지 몰라도 따뜻한 마음씨를 가졌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나였다면 건초 더미에 분해되어 있는 고철 덩어리에게 궁금증을 갖거나 마음이 쓰였을까? 전혀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장난 로봇에 불과했던 콜리와의 첫 만남을 특별하고 소중한 인연으로 만든 것은 바로 연재이다. 고장난 콜리를 정성으로 고쳐준 것, 집에 데려와 관심으로 보듬어 준 것 모두 콜리가 후에 연재의 가족에게 있어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있었던 밑거름이자 발판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소설 '천 개의 파랑'을 통해 처음으로 SF라는 장르를 접하게 되었다. 현실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나에게 공상소설은 내용이 와닿지 않는다는 점으로 인해 선뜻 손이가지 않는 장르였다. 그러나 평소 공상소설에 갖고있던 편견과는 별개로 세세한 감정 묘사는 깊은 감정이입을 하게 만들었다. 소설을 읽으며 그 감정에 휩싸이게 된 것은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일이었다. SF가 진보하는 기술 속에서 변화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예견하는 장르라면, '천 개의 파랑'은 진보하는 기술 속에서 희미해지는 존재들을 올곧게 응시하는 소설이다. 발달한 기술이 배제하고 지나쳐버리는 이들, 엉망진창인 자본 시스템에서 소외된 이들, 부서지고 상처 입은 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던 이들을 '천 개의 파랑'은 다정함과 우아함으로 엮은 문장의 그물로 가볍게 건져 올린다. 이 소설은 희미해진 이들에게 선명한 색을 덧입히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의 속도 속에서,
있는 힘껏, 여린 풀잎 하나 놓치지 않는 올곧고 믿음직한 시선.
'천 개의 파랑'을 읽으면서 행복과 위로, 애도와 회복, 자유로움과 같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안락사당할 위기에 처한 경주마 ‘투데이’, 하반신이 부서진 채로 폐기를 앞둔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 장애를 가진 채 살아가는 소녀 ‘은혜’, 아득한 미래 앞에서 방황하는 ‘연재’, 동반자를 잃고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끝없는 애도를 반복하는 ‘보경’, 소설 '천 개의 파랑'은 이렇듯 상처 입고 약한 이들의 서사를, 그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따뜻한 파랑처럼 아우른다. 세계의 구석에서 누구도 홀로 물방울처럼 울지 않게 말이다. 눈을 감았다가 뜰 때마다 천변만화하는 세상 속에서도 '천 개의 파랑'은 변하지 않는 것, 이 세계의 가장 느리고 약한 것들과 기꺼이 발걸음을 맞추며 걷는다. ‘우리는 모두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풍경 속에서도 ‘있는 힘껏 고개를 돌려 흐릿한 풀잎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올곧으며, 개미 한 마리조차 밟지 않기 위해 느린 걸음을 연습하는 작가의 태도는 믿음직스럽다. 그렇기에 우리는 작가의 시선과 발걸음에 맞추어 '천 개의 파랑'을 읽는 동안 ‘부서지고 다친 작은 존재들의 끈질긴 연대 너머로만 엿볼 수 있는 촘촘한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