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파랑 리뷰

독서 토론을 준비하며 길게 고민했던 질문 주제가 있었다. ‘책 속의 등장인물 중 자신과 가장 닮은 인물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독서토론 당시엔 꽤나 소시민적으로 행동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삭막하게 굴지는 않는 민주나 점장이 아닐까? 하고 답했었다. 리뷰를 쓰며 다시 한 번 생각해봤는데, 인물을 사람으로만 한정시키지 않는다면 투데이와도 꽤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빠르게 달리는 말… 이지만 이제 천천히 주변을 바라보며 달릴 줄도 알아야 하는 말. 사실, 대다수의 현대인들은 꽤 모순적인 가치를 지키며 살아야 한다. 빠르게 자신의 능력을 갈고 닦아 출중한 실력으로 앞을 막아서는 것들을 처리하며 훌륭한 직업적 능력을 갖춘 인물로 성장해야 하면서, 주변 또한 잘 살펴야만 한다. 소외되는 누군가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 대해서도 고찰해야만 한다. 이 둘을 한번에 해내기는 사회 자체나 사회의 구성원으로서나 어려운 일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 그래도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노력하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화려하거나 절망적인 미래 세계 묘사에 충실한 SF 소설이라기보다는 서정적인 소설이라 여러 부분에서 감명을 받으며 읽었는데, 소방관과 콜리가 말하는 가치인 ‘천천히 달리기’ 에 관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보경은 결혼 준비 역시도 타고난 성격으로 준비해나가는 소방관을 보다가 물었다. 답답함이나 짜증이 아니라 순전한 궁금증이었다. 그때쯤에는 소방관의 성격에 보경도 어느 정도 융화된 후였다. “당신은 뭐가 그렇게 여유로워? 가끔 보면 답답해.” (중략) 보경은 단지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느끼는 다급함과 초조함이 싫었다. 그러니 모든 일은 예정보다 조금 더 일찍, 버스를 놓치거나 영화 관람 시간에 늦는 일이 없도록 부지런을 떨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소방관은 초조함을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다는 듯 행동하지 않았던가. 세상의 시간에 묶여있지 않는 것처럼. 소방관은 그때 보경의 질문을 듣고는 맞잡고 있던 손에 깍지를 끼며 별 하나 떠 있지 않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때의 걸음도 느긋했던가. 양반걸음이라 놀릴 만큼 보폭이 크고 느렸던 걸음걸이… 이제는 보경이 흉내 내려고 해도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

“너무 빠르니까요. 조금 느려도 되지 않을까요?” (163p)

 

그곳에서 아이들을 보았다. 말 한 마리와 콜리도 있었고 처음 보는 남자도 있었다. 보경은 그 자리에 서서 감기가 몸속 곳곳에 스미는 것도 모른 채 한참 동안 그들을 지켜봤다. 이상한 경주였다. '빨리'가 아니라 '천천히'가 터져 나오는. (중략) 연재는 그렇게 말하고 쉬라며 방을 나갔다. 연재가 얼핏 웃은 것 같기도 했고 보경이 잘못 본 것 같기도 했다. 보경은 방에 홀로 누워 오늘 경마장에서 목격했던 아이들을 떠올렸다. 천천히, 천천히. 빨리 달리지 말고 천천히. 세상에서 가장 우스운 경마 연습일 거였다. (289p) 

 

 

천천히, 느리게, 여유 있게, 느린 호흡으로, 하늘을 쳐다보고, 주변을 둘러보고, 네 등에 타고 있는 콜리의 움직임을 함께 느끼면서…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했다. 경마장에서는 빠른 말이 1등을 하지만, 느리게 달린다고 경기 도중 주로에서 퇴출당하지는 않았으므로, 애초에 천천히 달리는 것이 규정에 어긋나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모두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34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