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파랑>을 읽으면서 특히나 생명(사람이 아닌)과 사회의 규칙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에게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들이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기도 했고, 세상을 그저 곧이곧대로 순수하게 바라보는 콜리의 입장도 마음 속에 깊이 남았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콜리'라는 캐릭터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장면, 혹은 좋다고 느껴졌던 부분들을 리뷰로 남기고자 한다.
- 20페이지 (부당한 일을 당하고 있음에도 그게 자신의 설정값이니까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콜리의 모습이 안타까웠고, 콜리는 다른 로봇과 다른 것을 알고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일을 하는 민주의 심정도 이해가 됐던 장면이었다.)
짧은 훈련이 끝나고 콜리는 다시 좁은 방으로 들어갔다. 민주가 철창 문을 잠그기 위해 직원 카드를 꺼내는 걸 바라보다가 콜리가 물었다.
"잠그지 않으면 안 되나요?"
민주가 기기에 카드를 대자 자물쇠가 잠겼다. 민주가 콜리를 쳐다봤다.
"제가 문을 열고 나갈까 봐 잠그는 건가요? 제게 신뢰도가 없나요?"
"규정이야. 어쩔 수 없어."
민주의 대답에 콜리는 고개를 끄덕이고 물러났다. 문을 열어놔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 규정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사회 질서는 모두가 약속된 규정을 어기지 않아야 유지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콜리에게도 그런 규정이 몇 가지 있었다. 하나는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인간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다. 콜리가 가려는 민주에게 말했다.
"혹시나 규정이 바뀐다면 말해주세요."
- 133페이지 (정을 많이 주면 이후에 힘들어지기 때문일까. 너무 현실적인 수의학과생들의 이야기였다. 예전에 수의사들이 "동물을 살리고 치료해주고 싶어서 왔는데 죽어가는 모습을 너무 자주 보고, 안락사를 해야 한다는 게 너무 절망적이었어요."라고 했던 말이 떠오르는 장면이기도 했다.)
복희에게 경마장 말 관리를 인계했던 수의학과 선배는 말의 눈을 오래 바라보지 말라고 충고했다. 눈을 마주치면 공격한다는 본능이 말들에게 있었나, 싶었지만 이유는 복희의 예측과 정반대였다.
"눈이 꼭 흑구슬 같지 않니."
복희를 데리고 처음 경마장에 왔던 날 선배는 말의 목덜미를 쓸며 말했다. 말 눈은 흑구슬 같았고 선배의 눈은 물방울 같았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을 계획이 전혀 없다는 선배의 말이 그 순간 복희에게도 현실로 와닿았다. 선배는 이미 너무 많은 아이들을 가슴에 품었고 그 아이들만으로도 슬퍼할 앞날이 가득했다. 선배는 말의 목덜미를 두드리며 복희에게 이곳을 쓸어보라고, 만져주면 가장 좋아하는 부위라고 말했다.
- 342페이지 (작중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뒤늦게 엄마의 과거를 알게 되었고 어느 정도의 죄책감이나 의문을 가지고 있던 연재였으나, 결국 현재의 엄마와 그때의 엄마는 다르지 않다는 점을 알아가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또 콜리는 연재의 은밀한 비밀을 공유하게 됐는데, 그건 연재가 심심할 때마다 보경의 영화를 찾아본다는 것이다. 연재는 같은 영화를 반복해 보는 것임에도 늘 처음 보는 영화처럼 모든 장면과 대사에 집중했다. 특히나 보경이 나오는 순간에는 눈 한 번 깜빡하지 않았다.
"그렇게 재미있으신가요?"
콜리가 물었을 때 연재는 고개를 저었다.
"내 취향은 아니야."
"그럼 왜 그렇게 이 영화를 자주 보세요?"
"신기해서."
"뭐가요?"
"나를 만나기 전의 엄마가."
"당신을 만난 후의 보경도 저 시절의 보경과 같아요."
연재는 콜리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가 다섯 번째 반복해서 보는 영화가 끝나서야 입을 열었다.
"맞아, 같은 사람이야.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엄마는 그때도 지금도 같은 사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