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한' 이타주의자, 냉정한 '이타주의자'

일반적으로 내가 책을 선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부분은 목차이다. 평소 책을 순차적으로 읽기보단, 내가 읽고 싶은 주제와 목차를 읽은 후, 나머지 부분과 함께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다. 그래서 목차는 무엇보다도 나에게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간혹 제목부터 나를 끌어당기는 책이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경우이다. 누군가 추천한 ‘냉정한 이타주의자’의 경우, 반어적인 책 제목으로 인해 선택하게 되었다. 책 제목은 누가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잘 지었다. 책의 제목을 보고 내가 생각했던 내용은 자기계발서였다. 이타적인 삶에 있어서 효율성을 따져야한다는 이성적 내용을 기대했으나, 실제로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기부’였다. 사실 고등학교 때, 봉사점수를 위해 해보았던 봉사활동을 제외하고는 봉사나 기부를 해본 적이 없는 나로써는 신선한 주제였다. 물론, 사회적 약자를 보고 안타까움이나 돕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을 돕고 내가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은 내가 충분히 안정적인 직업 혹은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이룬 후에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책의 도입부에서 나온 ‘플레이펌프’는 내가 알고 있는 몇 안되는 자선단체의 봉사 혹은 기부중 하나였다. 개인적으로 획기적인 아이디어라고 생각했기에 관련 기사를 여럿 찾아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를 비판하며, 더 많은 사람을 돕기 위해, 즉, 이타적인 행동을 위해서는 냉정하게 나의 행동과 기부가 효율적일 것인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나의 손길이 미치는가를 판단해야함을 저자는 이타적 행위의 중요한 고려 사항으로 지목하고 있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 중 인상 깊었던 내용 역시 이러한 부분이다. ‘좋은 의도가 나쁜 결과를 낳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는 저자의 주장은 평소 내가 하지 못했던 생각 중 하나였다. 이와 관련된 윤리적 딜레마에 관한 이야기도 종종 들려오곤 한다. 심정지로 쓰러진 사람을 보았을 때, 내가 미숙한 심폐소생술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과연 어설프더라도 응급처치를 해야할 것인가 아니면 오히려 더 위급한 상황을 만들 수 있으니 다른 행동을 취해야할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는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딜레마일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내가 응급처치를 하다가 실수로 상황을 악화시키더라도, 이를 어느 정도 정상참작 해준다. 그러나, 이타주의적 행동은 어떤 행동을 해도, 거의 모든 상황에서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 단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큰 혜택이 돌아가는가의 문제일 뿐이다. 당연히 기본적으로 생각해야할 부분이지만, 대부분 사람은 이러한 요소를 고려하기보단, 나의 관심사에 관련된 선행을 하곤 한다. 이 책을 읽으며, 효율적인 자선단체를 고르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해보게 되었다는 것이 나에게 있어 가장 큰 성과이다. 그러나, 책의 전반부의 핵심 내용인 ‘최고의 선행은 전형적인 선행에 비해 더 큰 성과를 내는 것’이라는 주장을 계속해서 보다보니,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나의 의구심이 폭발하게 된 부분은, 의료 행위를 통해 누군가를 살리고 싶어 개발도상국으로 가려고 한 의사에게 ‘의료봉사’가 아닌 ‘기부를 위한 돈벌이’를 택하게 함으로써 가난한 나라에서 의사로 일할 때보다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게 되었다는 부분이다. 누군가가 현장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그가 기부한 돈으로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모두가 기부만 하고, 직접 봉사행위를 하지 않는다면, 과연 그들을 도울 수 있을까? 나의 주관적인 견해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또한, 적은 수의 공정무역 제품을 만드는 공장보다는 많은 수의 노동착취를 하는 공장이 낫다는 식의 논리를 펼쳐나가고 있음을 보며, 조금은 저자에게 분노하게 되었다. 단편적이고 단기적인 관점에서는 노동착취라도 하는 공장이 많은 것이 물론 그들에게 좋을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과연 그게 그들을 위한 것일까? 냉정하게 이타적인 행위를 해야 한다는 책의 중심 주제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제도적인 측면을 정비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단순히 공정무역을 비판하기보다는 해결책을 함께 제시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소소한 노력과 개인의 노력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이야기하며 기부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지만, 동시에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개개인의 노력보다는 기부를 통한 방법이 효율적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사소한 노력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 과연 기부를 통해 무엇인가를 바꾸고자 할까? 오히려 기부했기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덜 느끼며 온실가스 배출행위를 죄책감 없이 하지는 않을까?

독서 토론을 하며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작가는 자선단체를 운영한다고 한다. 작가를 알고 나니, 책의 흐름이 어느 정도 다르게, 그러나 전보다는 명확하게 이해되기도 했다.

정리하자면, ‘냉정한 이타주의자’라는 책이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감정에 휩쓸린 기부를 하기보다는 효율성을 고려한 이성적인 기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하고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책을 구성하고 있는 핵심 주제에 대한 근거 등은 나의 반발심을 불러일으켰다. 더 나아가, ‘효율적 선행’이라는 단어로 자신이 운영하는 자선단체를 홍보하기 위해 그럴듯하게 포장을 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 누군가 이 책을 읽고자 한다면, 아마도 책의 1/3만 추천을 해줄 것 같다.